정세훈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 『동면 』이 출간되었다.
50편의 시가 4부로 나누어 구성된 시집이다. 정세훈 시인은 시집 권두의 ‘시인의 말’에서 “우리의 문학은 산업화와 자본으로부터 점령당한 인간의 삶의 본질을 찾아 제자리로 복귀시켜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됐다. 그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여 우리 사회를 진정한 인간의 삶을 위한 장으로 구축해가야 한다”고 밝히고 있듯이 노동자적 시선으로 자신과 주변의 삶과 풍경을 포착하는 시들로 채워져 있다.
시집 제목으로 내세운 ‘동면’이란 겨울이 지난 후 봄에서 가을까지 이어질 새로운 삶을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겨울 동안의 긴 잠이다. 그래서 동면의 시간 속에는 깨어난 이후 활동해나갈 삶이 잠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집의 제목이 시집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응축하고 있다고 할 때, ‘동면’이라는 시집의 제목은 이 시집이 잠재성의 시간을 전면화하여 의미화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정세훈 시인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동면에 들어간 듯이 보이는 삶에서도 신생의 힘이 잠재해 있음을 투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 늘 내 귀밑머리에 앉아 있다 / 보이지 않는 사상이 늘 내 가슴속을 차지하고 있다”(「보이지 않는 것」)고 말한다.
시는 어떤 대상의 보이지 않는 면을 보기 위해 마음을 다할 때 형성되기 시작한다. 시 쓰기란 보이지 않는 것, 잠재해 있는 것이 우리 삶과 세계를 지탱하고 형성하는 지반이자 힘임을 시적으로 인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사상”과 “보이지 않는 바람”이 마음과 감각을 저변에서 지탱하고 형성하는 힘이라는 것을 인식하듯이 말이다. 정세훈 시인은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한겨울의 삶, 그리하여 동면에 들어간 삶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잠재성-신생을 가져올 봄-을 포착하고 인식하고자 한다. 이 『동면 』은 시인의 그 잠재성의 인식을 향한 시적 여정이 담겨 있는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