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있어야할 곳에 있는 것이 법이다 》

  

 

내가 기거하는 처소는 좀 높은 곳에 있다. 그래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면 온갖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따로 풍경화를 걸어 놓을 필요가 없다.

 

아름답게 자리한 오목조목한 산자락들, 그 아래 철 따라 색이 변하는 들판하며 조개껍질을 엎어 놓은 듯 오망조망한 집들 하며 그 어떤 화가가 철마다 이렇게 아름답게 채색할 수 있으며 또 어떤 조각가가 이렇게 균형 있게 조각해 낼 수 있겠는가?

 

나는 이런 자연의 신비함에 항상 감탄하며 그때마다 참 신비하게도 있어야할 곳에 있을 것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산이 있어야할 곳에 산이 있고 바위가 있어야할 곳에 바위가 있으며 강이 흘러야 할 곳에 강이 어김없이 흐른다. 이것이 법이고 진리 아닌가? 이러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 또한 지켜보노라면 살아가는 생존의 법칙이 참 놀랍고 신비하다.

 

까치 한 마리가 살아가는 것도 그렇다. 내 처소에서 멀지 않은 곳 나무에 가치가 집을 지었다. 해빙기가 되니 한 쌍인 듯 까치 두 마리가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며 울어 대기 시작하더니 한 나무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어디서 작은 나무들을 들어다 어느 새 집을 다 지었다. 한참 유심히 바라보니 나무의 가지가 여러개로 갈라진 곳에 집을 지었다. 얼마나 잘 지었는지 세찬 바람에도 나무는 흔들려도 까치집은 까닭없다.

 

알을 언제 낳았는지 새끼에게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다 주더니 5월이 들어서기 전 새끼와 둥지를 떠났다. 이런 것을 보면서 자기 자식도 버리는 일부 몰상식한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디 사람보다 나은 게 이런 미물뿐인가? 있을 곳에 있는 자연의 법을 보면서 사람도 있어야할 자리에 사람이 있으면 탈이 없으련만 그릇이 안 되는 사람을 자리에 앉혀 놓으니 탈이 나는 법이다.

 

한 되만 들어가는 봉지에 억지로 한 말을 담으려 하면 봉지는 찢어지고 만다. 사람도 인물이 안 되는 사람을 자기 사람이라거나 친인척이라고 자리에 앉혀 놓고 비호하다 보니 항상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최근에 영포라인이니 친노 비노하는 정치판을 보면서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을 생각하게 된다. 있어야할 곳에 있는 자연의 법칙처럼 있을 자리에 있을 만한 사람을 앉히면 무슨 탈이 나겠는가? 거기다가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사람들이 무슨 파니 무슨 계보니 하는 것은 또 무슨 우스꽝스런 일인가?

 

법학자들은 법 중에서 최상의 법은 자연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법과 정치를 떠나서 우리 인간은 자연에서 배우고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

 

있어야할 자리에 있을 사람을 추천한 고사 하나가 있다. 중국의 긴 역사 속에서 진나라 도공왕은 사람을 적재적소에 잘 등용해 써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왕이다.

 

중군위라는 요직을 맡고 있던 기해라는 신하가 찾아와 뵙기를 청하였다. 그 중군위는 신이 이제는 나이 많고 그래서 일처리가 늦고 명석하지 못하니 물러갈 것을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도공황은 그러면 당신 후임 자리에 당신처럼 유능한 인물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이에 기해는 해호의 아들이 그 자리에 적임자라고 주저없이 천거했다. 이 말을 들은 도공왕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해호면 당신의 정적(政敵)이 아닌가, 어찌 당신의 정적을 추천한단 말인가.

 

노신하 기해는 당당하게 답했다.

왕께서는 지금 저에게 그 자리에 적임자가 누구인지 물으셨지 정치적으로 나의 적이 누군지 묻지는 않았사옵니다.

 

도공왕은 감복하여 노신하의 천거한 대로 인사를 단행했다. 그러나 유능했던 그가 그만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러나 왕은 애석한 마음 가운데 다시 노신하였던 기해를 다시 불러 그대가 추천한 사람이 죽었으니 다시 사람을 추천하라고 했다.

 

이번에도 노신하의 대답은 기상천외였다. 최적임자가 죽었으니 이번에는 그 자리에 기오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기오라면 당신의 아들이 아니던가?

 

어떻게 당신의 아들을 추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에 기해는 당당하게 답했다.

 

왕께서는 지금 저에게 적임자를 물으셨지 저의 아들이 누구냐고 물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왕은 기해의 아들을 그 자리에 앉혔다. 이 고사는 후일 사람을 공평하게 등용하며 그 마음이 바른 것을 일컫는 기해천수(祁奚薦誰) 고사성어가 생겨 후세에 전하는 계기가 된다.

 

조선 조 오백년 사직이 망한 원인 중 하나는 사색당파이다. 그 사색당파니 오늘의 정파 챙기기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있어야할 곳에 있는 자연의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기해천수라도 배우는 우리 정치 현실이 절실하다고 본다.

 

 

나무관세음보살.

 

SNS 기사보내기
법천스님
저작권자 © SBC 서울불교방송 불교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