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바르다는 것은 중도(中道)이다.

「팔정도」 로서 바른 생활이 실현되면 그것은 가장 행복한 세계, 바로 열반이다.

그럼 도대체 바르다는 것은 무엇인가? 부처님은 이 실천의 원칙을 어떻게 말씀해 주셨는가

 

「비구들이여, 출가한 사람은 두가지 극단에 친근해서는 안된다. 그 두가지란 무엇인가?

온갖 욕망에 오로지 집착하는 것은 비열하다. 범부의 소행이어서 성스럽지 못하며, 또 무익하다. 

그리고 스스로 고행을 일삼는 것은 다만 괴로울 뿐, 성스럽지 못하며 또 무익하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 두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깨달았다. 

그것은 눈을 뜨게하고, 지혜를 생기며, 적정(寂靜)과 증지(證智)와 등각(登覺)과 열반에 도움이 된다. 이에 도움이 되는 중도는 무엇인가? 성스러운 팔지의 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 말씀에는 쾌락주의, 즉 욕망의 격정에 몸을 맡기는 생활태도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극단의 금욕주의, 즉 고행에 의해 도를 닦고자 하는 실천태도에 대한 비판이 있음이 분명하다. 이 비판의 배후에는 자신의 비통한 체험이 있다. 


그 전자는 그가 가정에 의해서 체험한바 이거니와 , 후자는 저 보리수 밑에서의 고행과정, 많은 사람들의 탄성을 불러 일으킨 그 고행으로도 해결의 길을 찾지못하고 길을 잘못 선택했음을 깨달아야 했던, 그 체험에서 금욕주의에 대한 비통한 비판이 생겨났을 것으로 믿어진다.

 

어떻든 붓다는 정(正)은 중(中)이라고 하신 것이다.

이 「정」은 「사제」의 가르침에 있어서는 고락중도(苦樂中道), 고와 낙은 중도라는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단지 괴로움과 즐거움과의 중간이라는 뜻은 아니다. 인생은 고와 낙을 피할수 없는 까닭에 그 어느 경우에도 집착하거나 피하지 말고 조화(調和)가 있는 세계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중도(中道)의 뜻은 아니겠는가 생각된다.

 

중도를 찾아내는 일 : 중도(中道)란 조화를 실현하는 지혜다 ,예를 들면 1미터의 중간을 50센치 이지만 그 중간을 찾기위해서는 1미터 전체를 바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 

즉 전체를 파악하는 것이  중(中)을 발견하는 전체가 된다. 중도를 찾기위해서는 전체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 문제에 대하여 충분한 인식을 갖는 것이 중도의 첫조건이 된다.

 

둘째로는 그 전체에서 중(中)을 선택하는 일이 필요하다. 

즉 전체관에 대해서는 바른지혜. 비판적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중도라는 것이 수학적 중심은 아니지만 1미터의 한 가운데는 찾기 쉽다. 그러나 복잡한 사건의 경우에는 그 중심을 찾는일은 쉽지 않다. 찾아내기 위해서는 이기심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 


즉 우리들의 현실적인 문제는 나와 너의 세계에서 전개되는 것이며, 우리들이 자기를 중요시하고 자기의 이익을 버릴수 없는 것처럼 이기심이 있는 경우 나와 너의 중간점을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중심은 비판적 선택의 지혜다.

 

이기적 편견은 진실고 보려하지 않고 그 때문에 삶을 그릇되게 인도한다. 이 편견을 넘어선 곳에 최고의 <중>이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중간의 길은 결코 아니다. 이 세상의 낙(樂)이라도 탐익하고 집착하면 고(苦)가 되지만 집착을 떠나버리면 낙으로 있는 그대로 즐길수가 있는 것이다. 현실 생활속에서 조화를 실천해 나가면 그것이 그대로 열반이다. 즉 열반이란 중도적인 생활의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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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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