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조부님의 명에 따른 조혼

 

<청천벽력과 같은 조부님의 명령>

“뭍으로 가자. 훌륭한 스승을 만나자. 뭍으로 가서 더 넓은 학문의 세계도 접해보고 신학문도 배우자. 아이들 대부분이 학교에 들어가 신학문을 읽히는데 옛 학문인 한자만 읽혀갖고 어찌 인간붕새가 될 수 있겠는가”

“뭍으로 가고자 하는 내 뜻을 읽으시고 날 부르시는 것이 아닐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 할아버님, 부르셨습니까?” 하고 조부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조부님은 무엇인가 망설이는듯 하시더니 무겁게 입을 여셨다.

“경보야, 네가 급기야 서당선생이 되었다니 늙은 할아버지의 소원을 풀어주었구나. 내 일찍이 너만이 물일이고 밭일이고 시키지 않으려 했는데 이제 내가 해냈구나. 애들 가르치는 것만으로 생계를 꾸리게 되었으니 장하다.그러나 남의 선생이 되자면 어른이 되어야 선생이 되는것이지 총각아이로는 남의 선생이 될 수 없는일이 아니겠느냐?”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이었다. 한참 뭍으로 도망치려는 판국에, 그것도 아직 16세의 어린 나이에 장가까지 가라니 청천벽력이란 말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하는 말 같았다.

 

하기야 당시의 결혼관례로 보아 12~13세에 장가를 보내는 집안도 있었고, 이미 15세로 성장한 경보소년으로 이성데 대한 호기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직까지 자신이 결혼하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장가까지 가게 되면 학문을 익히기 위해 육지로 나가겠다는 꿈은 산산히 부서지게 되고, 가정이란 올가미에 얽매어 바닷가 섬구석에서 보잘것없는 훈장노릇을 하며 한평생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듯 했다.

 

< 야속하신 조부님 >

“할아버지, 그것만은 안됩니다. 아직 네 나이도 나이려니와 저는 뭍으로 나가 학문을 닦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 어립니다.”

“이 녀석아, 옛날엔 나이 15세가 되면 호패를 차고 전쟁터에도 나갔는데 네 나이 이제 16세인데 뭣이 어리다는 거냐?”

“그래도 저는 싫습니다. 할아버지, 이제까지 할아버지 뜻을 받들어 한학을 공부하여 훈장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 혼자 힘으로라도 뭍으로 나가 훌륭한 스승을 만나 더 배우고 신학문도 익히렵니다. 신학문을 무시하고 구학문만 익히는 것은 절름발이 학문입니다. 앞으로는 학교에 다녀야 제대로 사람노릇을 할 것입니다.”

 

경보소년은 할아버지가 장가가라는 말에 혼자만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그간의 심정을 모두 말해버렸다. 여섯 살 때 서당에 들어갈 때에는 한문만 익히면 공부가 다 되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학교라는 것이 있고, 이제 뭍의 아이들은 서당에 다니지 않고 전부 학교라는 곳을 다니며 신학문을 배운다는 말을 듣고 경보소년의 가슴은 설래이기 시작했다. 어쩌다 학교 얘기만 나오면 못들을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역정을 내시던 할아버지는 손자가 정식으로 학교에 다니며 신학문도 익히겠다는 말에 크게 역정을 내신 것이다.

 

< 신학문을 한 집념 >

“뭐, 학교에 간다고? 그래, 왜놈의 종사리가 그렇게도 하고 싶어서 뭍으로까지 나가 종노릇하는 것을 배우겠다는 말이냐?”

“신학문을 배우겠다는 뜻이지 왜놈의 종이 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안된다. 그건 안돼. 학교에 가면 왜말을 배워가지고 왜놈 밑에서 벼슬살이를 하게 되는 것이니 그것이 왜놈의 종살이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그럼 할아버지는 앞 길이 만리같은 저를 이런 섬구석에서 훈장노릇이나 하면서 썩으라는 말씀입니까?”

“ 아- 이놈 봐라. 한문이라도 가르쳐놓으니까 이제 할애비에게 대들기까지 해. 네가 그만큼이라도 배운 것이 누구의 덕인줄이나 알아? 고얀놈 같으니라구, 그래 좋을 글 배워 할애비에게 대들라고 훈장어른이 가르치더냐?”

 

경보소년을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이유야 어떻든간에 웃어른이 역정까지 내도록 한다는 것은 손아래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는 뉘우침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지금은 몰락하여 바다에서 물일을 하고 계시지만 자신의 손자를 다른나라 사람의 종노릇이나 앞잡이노릇은 시킬수 없으시다는 할아버지의 꼿꼿한 선비정신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자신이 어려운 환경에서나마 서당을 다니고 급기야 훈장노릇을 대신할 정도로 글을 깨친것도 실로 할아버지의 덕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자신의 집안이 원래가 손이 귀한 집안이고, 당신이 애지중지하는 손자가 당신 살아계실때에 장가가는 것을 보고 죽어야겠다는 할아버지의 소망도 그릇된 생각은 아니라는 이해가 갔다. 또 문득 머리를 스치는 어떤 생각이 있었다.

 

“그렇다. 결혼이라는 것과 학문의 길은 별개의 것이 아닌가.어머님께서는 장차 내가 삼장법사가 되는 구슬을 받는 꿈을 꾸시고 나를 잉태하셨다고 하지 않으셨던가. 일찍이 공자님도 결혼을 하셨으면서도 크게 학문을 깨치셨고 석가모니부처님은 결혼하시어 아들을 보신 후에 출가하여 성인이 되셨다고 하시지 않았던가.

우선 할아버지의 소원을 풀어드려, 자손된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 학문을 깨치리라”

 

할아버지도 감정을 가다듬어 달래듯이 말했다.

“결혼이란 인간지사에 마땅히 한번은 치러야 할 도리이다. 이미 마땅한 규수도 정해 놓았고 날짜까지 잡아놓았다.”

경보소년은 조용히 흘러내리는 눈물만 닦았을 뿐이다. 경보소년은 이렇게 해서 16세의 어린나이에 신부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 경보청년의 혼례식 >

이 부분에 대하여 기술인이 집요하게 당시의 애기를 묻자 턱을 괴고 계시던 일붕 큰스님은 60여년 전의 일에 만회가 교차되시는지 턱을 괴었던 손가락으로 턱을 쓰다듬으시며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상당히 긴 시간이 흐르자 이내 입을 여셨다.

 

“ 집안 어르신들끼리의 일이라 나도 그 규수를 보지 못했지만 그 규수도 나를 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이미 정해진 혼사이고, 달리 도망칠수도 없었지요. 내 나이 이미 16세의 사춘기였으니 장가간다는 것은 싫은 것이 아니었고... 이왕 장가갈 바에야 신부가 박색이나 아니길 바랬을 뿐이지요.

 

말을 타고 신부집으로 갔더니 이미 만반준비가 다 되어있더구먼. 집례사가 지휘하는대로 서로 맞서서 삼삼구(339)의 예를 올리게 하고 서로 술을 마시게 하더니 혼례식이 끝났다고 하더군요. 저녁이 되어 이제 신방으로 들어가라고 해서 신방으로 들어갔지요. 부끄러워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어머님이 시키는대로 신부 앞에 다가앉아 대충 짐작으로 신부의 옷고름을 풀어주고 버선을 벗겨준 후에 입으로 촛불을 불어 끄고는 이불을 둘러쓰고 말았지요. 3일만에 새댁을 가마에 태워 집으로 데려왔는데 특별한 느낌이 없었어요.

그냥 싫지는 안다는 기분이었지요. 그뒤에 동네사람이 지나치는 말로 ‘신랑이 글재주는 있고 똑똑하게 생겼는데 나이가 어려서...’ 라고 이해못할 말을 하더군요. 무척 부끄러웠지요.

어쩌다보니 신부는 일점 혈육을 두게 되었고 내 대신 집안일을 거들면서 조부님과 시부모님을 모셨어요. 나같은 사람 만나서 부부의 재미도 모르고... 고생도 많이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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