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열반(涅槃)에 이르는 길


「성스러운 수행을 하는 것은, 열반에 들고 열반에 가기 위함이니...」

<잡아함경. 부처님과 제자 문답 가운데서, 인간의 궁극적 목표가 열반임을 가르치신 말씀이다>

이 열반은 팔리어로 「닙바나」(nibbana), 산스크리트어로는 「 니르바나」(nirvana)로서 중국 역경자들은 이것을 음사하여 「열반」이라 했고, 이것을 의역하여 멸도(滅道)니 적멸(寂滅)이니 혹은 더 간략하게 멸(滅)이라 하기도 했지만, 이무래도 원뜻이 잘 나타나지 않아서 「열반」이란 음사가 가장 많이 쓰이어 온 것이다. 굳이 원뜻을 찾는다면 「불이 꺼진 상태」 즉 「연소의 소멸」을 가리킨 말이다.

 

부처님의 제자 사리풋타가 외도와 이렇게 문답하였다.

“벗이여, 무릇 탐욕의 소멸, 노여움의 소멸,어리석음의 소멸, 이것을 일컬어 열반이라 한다”

사리풋타는 이렇게 명쾌한 설명을 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열반을 붓다의 죽음의 뜻을 쓰고 있는 것은, 붓다가 궁극의 목표로 제시했던 열반의 참뜻을 파악한 것으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사리풋타의 설명을 음미해보자. 오늘 우리들은 온갖 욕망을 지니고 살아간다.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옷, 이성을 사랑하고, 금전을 축적하고, 명예.권세를 쥐고자 원한다. 헤아려 보면 인간의 욕망에는 한정이 없다. 더욱 그것이 인간의 합리적인 노력으로는 달성될 가망이 없을 때 하느님이나 부처님의 힘에 의해 그것이 충족되기를 바란다. 즉 세속적 수단이 좌절됨으로써 종교적 수단에 매달리려 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종교의 세계도 또한 인간이 지니는 온갖 욕망의 소용돌이가 되어 버린다.

 

이렇게 종교의 세계에 밀고 들어오는 욕망에 대해 세상의 종교적 지도자들은 흔히 영합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 같다. 그러나 여러 종교 가운데서 불교만은 아니 최소한 붓다의 가르침만은, 그런 종교들과는 다르다. 쾌락이나 명예나 축재같은 인간적 욕망을 약속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욕망에의 격정을 완전히 없앰으로써, 마음을 구속하고 이성(理性)을 방해하는 것이 없는, 완전히 자유롭고 광활한 심경을 궁극의 이상으로 삼아 ‘너희들도 오라’고 손짓하여 부른것이었다. 그 경지를 열반이라는 말로 나타냈으며, 이의 실현을 방법으로 성스러운 팔지(八支)의 길, 즉 팔정도(八正道)를 제시해 주었다.

 

10) 네가지의 진리(四諦)


보리수 밑에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은 그 깨달은 내용을, 그의 사색을 정리하고 체계화하면서 해탈의 즐거움에 젖어 있다가 드디어 이를 전하기 위해서 길을 떠나게 된다.

미가다야에서 수도하고 있는 다서 비구(전에 같이 수행하던 이)를 찾아 나섰다.

무상(無常).고(苦). 무아(無我)의 이념체계가 정비된 곳에서 실천에의 길은 스스로 뚫리게 마련이거니와, 이들 다섯 비구들에게 한 최초의 설법(이른바 初轉法論)은 「사제(四諦)」이다. 네가지 진리라는 뜻의 이 「사제」 또는 사성제(四聖諦)는 붓다 설법의 중심이 되는 것으로서 과(果)와 인(因)의 관계로 인생의 미오(迷悟)를 설명한 것인데,미혹한 세계의 결과와 원인으로서 고제(苦諦)와 집제(集諦) 또한 깨달음의 세계와 결과와 원인으로서 멸제(滅諦)와 도제(道諦)를 말한다.

 

부처님께서 여러 가지 말씀을 하신 후 그 마지막, 이런 말씀을 하신다.

「비구들이여, 내가 설한 것은 무엇이었던가.<이는 고(苦)다”>라고 나는 설했다.(苦諦)

<이는 고의 발생이다>라고 나는 설했다(集諦)

<이는 고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설했다(滅諦)

또 <이는 고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나는 설했다(道諦)

비구들이여, 왜 나는 이것을 설했던가.

비구들이여, 그것은 실천에 도움이 되는 까닭이며, 실천의 기초가 되는 까닭이며, 적정(敵靜).증지(證智).등각(登覺).열반(涅槃)에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이 부처님의 「사제(四諦)」 설법은 여기에서 차례대로 검토해 보자.

 

고의진리-고제 : 붓다는 이 첫째 명제에서 자기의 과제를 제시했다. 존재의 유한성 앞에 전율하는 인간의 양상이 그것이다. 「이는 고(苦)다」라는 말은 그런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붓다는 그것을 자각한 까닭에 출가하여 수하석상(樹下石上)의 사문(沙門)이 되었던 것이지만, 그러나 자각하든 안하든, 또 출가하든 안하든 이 과제는 모든 사람위에 무겁게 걸려있는 것이다.

 

괴로움의 원인-집제 : 그러면 고(苦)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이 말미암아 생기는 소이는 무엇인가를 탐구한 것이 둘째 명제의 집제(集諦)이다. 「이는 고의 발생이다」라고 하여 갈애(渴愛)가 고의 발생조건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인생의 괴로움의 근거를 갈애(욕망)에서 찾아낸 것이다. 집(集)이 모인다는 뜻으로서 많은 원인이 모여서 결과가 있으므로 이 모인 원인을 집(集)이라고 한다. 이것은 기원(起源)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생에 대한 갈애, 소유에 대한 탐욕, 명예,권세에 대한 격정,그런 지나친 욕망이 그 원인이라고 지적되었다. 붓다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점은 여기에 있지 않은가 생각되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이런 주장은 세상의 일반적 조류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생을 괴로움이라고 보는 것은 오래살기를 원하면서도 너무도 신속히 늙고 병들고 죽음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은데도 요구가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그런데 붓다는 그렇게 오래살기를 원하고 많은 것을 갖고자 하는 생각이야말로 괴로움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치는 그럴지 모르지만,우리들의 소망과는 명백히 배치된다. 소망과 배치할 경우, 쉽사리 납득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어떤 욕망도 채워지기는 어렵다.인생의 괴로움은 이 욕망의 격정에 있다. 그럴진대 인생이 괴로움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그 격정의 요인을 제거하는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경전의 말씀과 같이 「세상은 갈애로 인도되고, 갈애로 인해 괴로움을 받는다.」만약, 그렇다면 예속없는 인생을 확고히 세우기 위해서는 이 갈애를 없애야될 것이다.

 

편안한 세계 -멸제 : 세 번째 멸제(滅諦)는 고가 멸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갈애가 없어진 편」안한 세계가 열반(涅槃)이라는 세계다. 열반은 앞에서도 설명된 바 있지만 인간의 번뇌가 완전히 소멸된 상태를 가르킨다. 번뇌의 가장 근본적인 갈애, 즉 무명(無明)이지만 또 달리 탐(貪)함과 노(怒)하는 것,무지(無知)이라는 세가지 말로도 표현하고 삼독(三毒)의 번뇌라고도 한다. 탐내는 것과 노하는 것,그리고 무명, 이와같은 번뇌의 불이 꺼졌을 때 괴로움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가 나타난다. 그것은 열반이라고 한다.

 

열반을 실현나는 길-도제 : 그래서 그 뒤를 이어, 넷째의 명제가 「이는 고이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제시되기에 이른다. 길이란 목적지에 이르는 방법, 즉 실천을 의미한다. 그 실천항목으로 붓다가 제시한 것은 「성스러운 팔지(八支)의 도(道)」 즉 팔정도(八正道)다.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 정업(正業).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의 여덟가지를 가리키는 것이다.


--------계속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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