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법천대종사 동지법어 '동지와 화복'>

해마다 양력으로는 12월22일이 동지에 해당하는데 음력으로는 일정하지가 않고 2021년도 금년은 음력으로 11월 19일, 양력으로 12월 22일 입니다.

동지는 이십사계절의 하나로 태양은 이 때 가장 남쪽에 기울어져 한낮의 태양의 뜨고 지는 방향도 가장 남쪽으로 기울어지며,북쪽으로 갈수록 그 도는 심하여 북극지방에서는 수개월 동안 태양이 전혀 지평선 위로 나타나지 않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그리고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이 일년중 가장 짧고,열량도 가장 적으며,밤이 길고 낮이 짧습니다.

그러나 이 날을 기점으로 짧아만지던 낮의 길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입니다.그래서 동지를 일양시생지일(一陽始生之日)이라고 하는데,양(陽)의 기운이 비로소 시작하는 날이라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인간만사는 흥진비래요,고진감래이듯이 자연현상도 이처럼 음지와 양지가 교차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민간에서도 동지팥죽을 쑤어서 조상님께 시식(施食)으로 차례(茶禮)를 지내고 대문이나 문간에 죽물울 뿌림으로써 악귀를 쫓는 풍습이 있었습니다.이 날 팥죽을 뿌리는 유래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보면,옛날에 공공씨(共工氏)라는 사람이 불효자식을 두었는데,이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귀(疫鬼)가 되었으므로 이를 물리치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죽어서 역귀가 된 공공씨의 불효자식은 평소에 붉은 팥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동짓날에 붉은 팥죽을 쑤어서 재앙을 면하기를 빌었다고 합니다.또 삼국유사에 보면 선덕여왕을 사모한 지귀(志鬼)라는 사람이 죽어서 역시 역귀가 되었는데 전국적으로 피해가 극심하므로 팥죽을 쑤어서 지귀 귀신을 물리친데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사는 별로 신빙성이 없고 팥죽을 뿌리게 된 동기는 음양오행이나 태양숭배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음양오행 붉은 색은 귀신을 쫓는 능력이 있다고 보고,또 붉은 색은 태양을 의미하는데 태양은 어둠을 물리치는 힘이 있고,귀신이란 어둠속에서만 활동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런 민속신앙과 음양오행사상이 결합되어 팥죽을 뿌림으로써 귀신을 물리치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지금도 절에서 구병시식을 할 때 붉은 팥을 사용하는 것이라든지 부적을 붉은 색깔의 경면주사를 사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짓날은 '다음해가 되는 날'이라는 뜻으로 아세(亞歲)라고도 합니다.하지로부터 짧아지던 낮시간이 이 날을 기하여 조금씩 길어지기 때문에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라고 보고'작은 설'이라고도 여겼고,이처럼 태양이 비추는 시간이 길어지는 현상을 보고 옛사람들은 태양이 죽음으로 부터 부활하는 것이라고 보아서 생명과 광명의 주인인 태양신에 대한 축제가 거행되었고,천문학계에서는 이 날을 신년의 원단(元旦=설)으로 치는 풍습도 있었던 것입니다.

또 '작은 설'이라 하여 동지 팥죽을 정초에 먹는 떡국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표상으로 삼은 것은 역시 고대에는 동지를 새해의 첫 날 즉 설로 생각했던 유풍으로 보입니다.

이 동지와 관련된 풍습을 살펴보면,이 날에 관상감(觀象監=지금의 기상대에 해당)에서는 달력을 임금에게 올렸고 임금은 이 달력을 모든 관원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하사하는 달력에는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임금의 인장을 찍었다고 합니다.요즘 같으면 대통령이 싸인해 주는 셈이지요,절에서도 대개 동짓날에 새해의 달력을 배포하는 풍습이 있는데 여기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요즘은 동지날에 특별히 하는 일이 없지만 옛날에는 농사와 관계된 일로 무척 바빴다고 합니다.새끼도 꼬고 가마니도 짜고 지붕을 새로 이는 일도 이 달에 했던 것입니다.

농부월령가에 보면 이 달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동지는 명일이라,일양(一陽)이 생하도다.
시식(時食)으로 팥죽 쑤어 이웃과 즐기리라
새 책력 반포하니 절후 또한 어떠한고
해 짧아 덧이 없고 밤 길어 지리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절에서도 해마다 이 날이 되면 팥죽을 쑤어서 부처님 전에 공양 올리고 화를 멀리 여의고 복을 받고자 하는 원화소복(遠禍召福)의 기도를 올리는 풍습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동지팥죽과 나한님의 신통에 얽힌 일화를 들려드리고 여러분이 멀리 하고자 하는 화(禍)와 반대로 모두 바라는 복(福)에 대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동지팥죽과 나한님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침 이 날은 오늘처럼 동짓날이어서 절에서는 팥죽을 쑤어 부처님께 올리는 날이었습니다.그런데 이 날따라 마사사(절이름)의 공양주 보살은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습니다.주지인 혜봉스님은 급히 공양주를 깨우며 말했습니다.

"이봐요,공양주 보살.아니 오늘이 무슨 날인데 잠만 자고 있습니까?빨리 일어나시오."
그제서야 공양주 보살은 아무 영문도 모르고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허참,오늘이 바로 동짓날 아닙니까?빨리 팥죽을 쑤어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야지요?"
세상 모르고 늦잠을 자던 공양주 보살은 이 말을 듣고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서

"아이구,이를 어쩌나 야단났네"하면서 황급히 부엌으로 달려갔습니다.그런데 이게 웬일인가,늦잠을 잔 덕분에 아궁이의 불씨마저도 까맣게 꺼져 버리고 재만 남아 있었습니다.요즘에야 웬만한 산중 절에서도 까스렌지를 사용하고 있지만 옛날에는 성냥이 없었기 때문에 불씨를 신주단지 모시듯 했던 것입니다.그런데 그 불씨가 꺼져 버리고 재만 남았으니 큰 낭패였습니다.

공양주 보살은 그만 가슴이 덜컹 내려앉고 눈 앞이 캄캄했습니다.부처님께 늦장을 부린 죄송한 마음은 둘째치고 당장의 주지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만 같아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생각 끝에 공양주 보살은 절 아래 동네에 있는 김서방네 집에 가서 불씨를 얻어오려고 발길을 재촉했습니다.동짓날 찬바람이 쌩쌩불고 눈은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데 그날따라 김서방네 집은 천리만리나 되는 것 같았습니다.한참 달려가 겨우 김서방네 집에 도착한 공양주 보살은 김서방을 큰소리로 불렀습니다.

그러자 김서방이 밖으로 나오며,"아니 아침부터 공양주 보살이 웬일입니까?"라며 의아한듯 묻는 것이었습니다.공양주 보살이 말하기를 "불씨를 좀 얻으려 왔어요.제가 그만 늦잠을 자는 바람에 오늘이 동짓날인걸 깜박 잊고 말았지 뭡니까?"하였습니다.

그러자 김서방이 이상한 듯이"아까 행자님이 오셔셔 불씨를 얻어 갔는데 아니 불이 또 꺼졌나요?"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행자님이라니뇨?우리 절에는 행자님이 없는데요."
"무슨 말씀이세요.조금 전에 행자님이 와서 배가 고프다고 하시면서 팥죽도 한그릇 드시고 불씨를 얻어 갔어요."공양주 보살은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 같았습니다.그 절에는 주지스님과 공양주 두사람 밖에 없는데 행자라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부리나케 달려서 절에 도착한 공양주 보살이 부엌에 들어가 보니 정말 놀랍게도 아궁이에는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었습니다.공양주 보살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우선 발등의 불을 꺼야 했으므로 급히 서둘러 팥죽을 쑤었습니다.

가까스로 팥죽을 쑤어 먼저 대웅전의 부처님께 올린 후 이번에는 다시 나한전으로 팥죽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나한님께 팥죽을 올리던 공양주 보살은 까무라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그도 그럴것이 나한님이 공양주를 내려다 보면서 빙그레 웃고 계시는데 그 나한님의 입가에 붉은 팥죽이 묻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양주 보살은"아이구!나한님,잘못했습니다."하면서 그대로 업드려 크게 절을 올렸습니다.김서방네 집에 불씨를 얻으러 갔던 행자는 바로 나한님이었던 것입니다.
어느 절에나 나한전에 모신 나한님의 입술이 유난히 붉은 것은 바로 동짓날 드신 그 팥죽이 묻어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한(羅漢)은 아라한의 준말로 소승불교에서는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성자를 말하는데,우리나라에서는 소승이라고 하여 좀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나한전에 모신 분들은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입니다.16나한이니 오백나한이니 하는것은 나한전에 모신 아라한의 숫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옛부터 이 나한님들은 신통력도 대단해서 나한님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오고 있는데,이 팥죽과 관련된 일화는 나한님을 우리 인간과 차원이 다른 신앙대상으로서 보다는 친근한 이웃으로 생각하게 하는 재미있는 설화입니다.

이제 동지와 팥죽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고,불자들이 동짓날 기도드리는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길흉화복(吉凶禍福)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누구나 하루 하루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고 복된 삶을 바라지 흉한 일 재난이 많은 삶을 바라지는 않습니다.특히 불자들이 기도하는 목적은 불보살님이나 신장님들의 가피로 화를 면하고 복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고도 볼 수 있는데,오늘 여러분이 이 자리에 모이신 까닭도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불자들은 화가 어디서 오며,복은 어디서 오는지,그 오는 곳을 잘 모르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습니다.다급하면 부처님을 찾아와서 복을 달라고 빌줄만 알지 복의 근원이 무엇이며,화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는것 같다는 말입니다.그렇지 않습니까?

복은 어디서 오며,화는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십니까?
복은 부처님에게서 오고,화는 귀신에게서 올까요?

그런데 사실은 복과 화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의 양면이라는 사실입니다.손바닥과 손등처럼 복과 화는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또 복이나 화가 부처님이나 귀신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마음 가운데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은 동짓날입니다.동지는 일년중 밤이 제일 길고 낮이 제일 짧은 날입니다.밤이 긴 만큼 낮이 짧습니다.그러나 하루 24이긴 여느날과 다름없습니다.긴것이 있으면 짧은 것이 있고,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듯 우리 인생도 복과 화가 교차하는 가운데 진행되는 것이지 어느 한가지만이 전부일수는 없습니다.왜냐하면 복이나 화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여기서 상대적이라는 것은 마음 먹기 따라서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 되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아름다운 여인이 옷을 잘 차려입고 어느 집을 찾아갔더니 그 집 주인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그러자 여인은 대답하기를
"나는 공덕천(功德天)이라 하며 내가 이르는 곳마다 머무는 집에 보배를 생기게 해주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뛸듯이 기뻐하며,집안으로 안내하여 모시고 극진히 대접했습니다.조금 후에 또한 어떤 여자가 문앞에 서 있었습니다.그 여자는 모습이 참으로 흉칙한데다가 다 헤어진 누더기를 입고 있었습니다.
집주인은 불쾌한 표정으로 그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냐?"
"나는 흑암천(黑暗天)이요."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
"나는 이르는 곳마다 그 집의 재물을 없애버리는 사람이요."
이말을 듣자 집 주인은 노발대발 칼을 빼들고 달려나와
"이년,빨리 물러가라.가지 않으면 이 칼로 죽이겠다."하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오.조금 전에 당신 집에 들어간 사람은 나의 언니인데 우리 둘은 언제나 함께 다니기 때문에 나를 쫓아내려면 나의 언니도 함께 쫓아내야 합니다."
주인이 방으로 들어가 언니인 공덕천에게 이 일을 묻자,공덕천은 대답하기를,"그렇습니다.나를 사랑하려면 내 동생도 사랑해야 합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부와 빈곤,복과 화,길과 흉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내용의 비유인데,그러면 공덕천은 누구이고,흑암천은 누구일까요?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우리 자신이 선한 마음을 가지면 공덕천이 찾아 오고 화를 자초하면 흑암천이 찾아드는 것입니다.따라서 길흉화복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양면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전 외제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주부들만을 상대로 한 강도사건이 메스컴에 크게 보도된 일이 있습니다.주로 서울 강남에 사는 부자집 주부들을 상대로 강도행각을 벌리다가 체포되었는데,그들은 외제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주부들만을 대상으로 차번호를 외워 가지고 차적조회를 한뒤 그 집 주소로 대낮에 찾아가서 강도짓을 했다고 합니다.

이 경우는 외제고급승용차는 복덩이가 아니라 화의 근원이 아닙니까?편하자고 타고 다니던 외제 고급승용차로 인해 떼강도를 스스로 안방으로 불러들이는 결과가 되었으니 이는 재산이 복이 아니라 화가 된 것입니다.

'대무량수경'에"재물이 있으면 재물을 걱정하고,재산이 없으면 또 재산에 고통 받는다."하셨는데 재물 자체는 복도 화도 아니지만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의 마음이 복도 되고 화도 되는 것입니다.

만인 강도를 당한 주부들이 외제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지 않았더라면 강도들이 어떻게 그 사람들의 집주소를 알아내서 강도짓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복도 화도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불보살님전에 기원함으로써 불의의 화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무량공덕을 지을수도 있지만 그러나 기원만으로모든 것이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그런뒤에 우리의 능력만으로 안되는 일은 불보살님의 가피를 기원해야지 모든일이 무조건 기도만 한다고 다 성취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은 동지법회입니다.
팥죽을 쑤어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굳이 팥으로 죽을 쑤는 까닭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가지 민속적인 의미도 있지만 팥의 색깔이 붉다는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붉다는 것은 밝다는 뜻이요,세상에서 가장 밝은것은 태양이요,태양은 어둠을 몰아내고 만물을 성장하게 합니다.

우리가 오늘 법회를 갖는 목적도,또 기도를 드린 목적도 복된 생활를 하기 위해서인데,복이란 행복이요,행복이란 어두컴컴한 생활이 아니라 밝은 생활을 뜻합니다.반대로 어두운 생활은 불행,화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기도를 드리고 법회를 갖는 목적은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어두운 면을 몰아내고 광명을 찾아 밝은 삶을 살고저 하는데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밝게 사는 것인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밝게 사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지혜롭게 사는 것이 밝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복은 지혜속에서 나오고 멀리 하고자 하는 화는 어리석음 가운데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든 예화 가운데 공덕천은 지혜요,흑암천은 어리석음인데 이 지혜와 어리석음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마음의 양면입니다.마음이 어둠속에 갇혀있으면 무명이라 하고 밝음속에 환히 들어나면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

동지날은 일년 365일 가운데서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입니다.그러나 바로 오늘부터 낮의 길이가 노루꼬리만큼씩 길어집니다.우리 인생살이도 즐거움이 있으면 괴로움이 있고 슬픔이 있으면 기쁨도 있기 마련입니다.

밤과 낮이 합하여 하루가 되듯 복과 화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양면이요,그리고 복과 화는 바로 우리 마음에서 옵니다.스스로 화를 불러들이는 어리석은 생활을 하지말고 복을 짓는 생활를 함으로써 다같이 공덕천이 되어 자기자신뿐만 아니라 이웃에게도 복을 선사하는 불자가 됩시다.

성불하십시요!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불교설법연구원편
법 천 스님 옮김
SNS 기사보내기
법천스님
저작권자 © SBC 서울불교방송 불교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