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산 김덕권


<칼럼>


도반(道伴)과 동지(同志)


사람이 서로 사귐에 있어 가장 바람직한 사이는 어떤 것일까요? 아마 그것은 도반(道伴)과 동지(同志)의 관계가 아닐까요?
그럼 도반이란 어떤 사이일까요? 도반이란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으로서, 도(道)로써 사귄 친구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불도란 깨달음을 의미하는 구도의 길로서, 즉 도반은 깨달음을 목적으로 같은 도를 수행하는 동지를 가리킵니다.
 
불가(佛家)에서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구비조건으로 스승과 수행하기에 적절한 도량, 함께 수도하는 좋은 도반의 세 가지 요소를 중요시하지요.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도량에서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다고 해도 함께하는 도반이 없다면 깨달음에 이르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입니다.
 
“좋은 도반을 만났다는 것은 공부의 모든 것을 이룬 것과 같다.”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수행하는 이에게 도반은 더없이 소중합니다. 도반은 단순히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깨달음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고 함께 실천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끊임없이 도반과 대화를 나누며 일깨워주기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지(同志)는 파란 고해(波瀾苦海)가 끊일 새 없이 일어나는 속세에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동지는 굳은 신념과 함께 목적을 이룰 때까지 모든 잡스러운 생각이 없어야 하고, 물론 배신이나 탐욕과 같은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정신세계에서는 도반이 필요하고 속세에서는 동지가 반드시 있어야 삶의 활력을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동지는 이해관계가 개입돼서는 안 됩니다. 불의한 자들끼리의 만남을 동지라고 하지 않습니다. 동지는 정의를 기반으로 하고, 그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있어야 하며, 동지들은 이 용기를 부추겨 주어야 합니다.
 
그 동지의 관계를 잘 나타낸 두 가지 고사(古事)가 있습니다. 하나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이고 또 하나는 ‘백아절현(伯牙絶絃)’의 얘기입니다.
 
관포지교는 춘추시대 제(齊) 나라의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가 매우 사이좋게 교제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은 본보기가 될 만큼 두터웠습니다. 이해관계를 떠나 서로를 배려하고 자기 몫을 기꺼이 양보할 수 있는 사이니 얼마나 아름다운 동지애인가요? 어려울 때 포숙아의 적극적인 도움과 배려가 없었다면 관중은 목숨을 잃었거나 구차하게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백아절현’의 뜻은 백아(伯牙)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編)>에 나옵니다. 자기를 알아주는 참다운 벗을 잃은 슬픔을 나타낸 것입니다. 백아는 거문고를 잘 연주했고 종자기(鍾子期)는 백아의 연주를 잘 감상했습니다.
 
백아가 거문고를 탈 때 그 뜻이 높은 산에 있으면 종자기는 “훌륭하다. 우뚝 솟은 그 느낌이 태산 같구나.”라고 했고, 그 뜻이 흐르는 물에 있으면 종자기는 “멋있다. 넘칠 듯이 흘러가는 그 느낌은 마치 강과 같군.”이라고 했습니다. 백아가 뜻하는 바를 종자기는 다 알아맞혔습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더는 세상에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知音)이 없다고 말하고, 거문고 줄을 끊고 종신토록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도반과 동지가 되려면 서로 지키는 바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 뒤에서 몰래 험담하지 않는 것입니다.
험담하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관계는 끝장납니다. 험담은 소문을 낳고 삽시간에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법이지요.
 
둘째, 무의미한 논쟁은 하지 않습니다.
진실한 도반과 동지는 어떤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 그 의견을 존중하려고 노력합니다.
 
셋째, 말을 끊지 않습니다.
도반과 동지들하고 대화할 때 유독 말을 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편한 마음에 무심코 튀어나오는 행동일지 몰라도 당하는 상대방은 상당히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넷째, 난처한 상황에 부닥치도록 두지 않는 것입니다.
진실한 도반과 동지는 서로 난처한 상황에 부닥치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아주 오래전 송년회 석상에서 음치인 저보고 노래를 부르라고 해 한 곡 부르다가 가사를 잊어버렸습니다. 당황하고 있는 순간 한 도반이 튀어나와 거들어줘 위기를 모면한 생각이 납니다.
 
다섯째, 성공을 질투하지 않습니다.
진실한 도반과 동지는 성공을 질투하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얼마나 쓸모없는 짓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여섯째, 판단과 수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도반과 동지는 어떤 점을 ‘고치려고’ 하는 일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더욱 나은 삶을 찾아가도록 합니다.
 
일곱째, 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관계는 어려움을 겪을 때 확연히 드러납니다. 힘든 시기일수록 등 돌리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성의껏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어찌 이 몇 가지에 한하겠습니까? 그래도 이 일곱 가지만 잘 지켜도 최소한 도반과 동지 사이에는 성겨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도반과 동지 사이에 그 사람을 가까이하면 까라지던 공부심도 일어나고, 없던 사업심도 생겨나며, 의혹이나 원망심도 사라지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곧 그 마음이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불교일보’와 ‘서울불교방송’* 가족은 모두가 도반이고 동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불교일보’와 ‘서울불교방송’*의 진정한 도반과 동지 아닐까요!

* ‘불교일보’와 ‘서울불교방송’ 중 택일?







 

 

SNS 기사보내기
곽선영기자
저작권자 © SBC 서울불교방송 불교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