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지선 스님
좌정 후 주장자 삼하하고



西山大師께서 頌하시기를
萬法由來空裏花 만법은 본래 허공 속에 핀 꽃과 같은데
豈宜徒算海中沙 어째서 부질없이 바닷가 모래를 헤아리는가?
但從鐵壁銀山透 다만 공안을 쫓아 은산철벽을 뛰어넘을지언정
不問如何又若何 참선하는 납자는 이유여하를 묻지 마라
하셨습니다.

삼하구순안거 무더위 속에 정진하시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오로지 화두 참구하기를 은산철벽을 만난 나그네처럼 쥐를 잡으려는 고양이처럼 전심전력으로 본참공안을 참구했으리라 믿습니다. 그 가운데 절박성이 부족하거나 악각악지(惡覺惡知)의 습관성으로 느슨한 시간보내기의 안거였다면 참으로 안타가운일입니다. 정진이 여일하신 스님들께서도

첫째는 선지식에게 점검하고
둘째는 진척이 없는 공부라 생각되며 미진한 갈등이 있는 분은 삶속으로 들어가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을 실천으로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자기공부와 현실현상 속에서 어떠한 차이와 괴리감이 있는지 실천으로 점검해 보는 것이 큰 공부입니다. 느슨해진 상태나 공부상의 병폐들을 실천해 봄으로서 걸러지고 극복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관념만 쌓이고 침공체적(沈空滯寂)으로 자기개조의 혁명은 영원히 있을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중득활(死中得活)이니 갱참삼십년(更參三十年)이니 하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걸음마 연습 없는 사람은 평생 걸을 수 없습니다. 어릴 적부터 열심히 걸음마 연습을 했어야 앉고 서고 달리기가 활발발한 무애자재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지금까지의 삶과 앎을 전부타파하고 출신활로의 길을 찾는 정진기간에는 굶고 굶은 정글의 맹수가 먹이만 생각하듯 참구해 가는지를 늘 확인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 만약 깨달아야 만이 실천할수 있다는 잡념이나 알아야 행(行)을 할수 있다는 생각 등의 자유주의적 사고는 허물투성이 인것입니다.

답을 알거나 느끼면서 하는 공부도 잘못됨이요, 선행(作福作善)과 보살행이라도 천당불찰에 머물며 오가는 행복을 가질 수는 있으나 그와 같은 어떤 경지라도 업식환영의 반복임을 알아야합니다. 일생궁극적인 의미는 공이라느니 하면서 남들의 삶을 반복해서 살아가는 실수를 해서는 않됩니다. 부처님이 가던 길도 가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자기인생 자기가 가는 길을 터득해가지 못하고 모두 모두가 공문(空門)에 출입하는 식객이 되어서는 않될 것입니다.
위에든 서산스님 게송같은 지침이 왜 나왔겠습니까?
참선수행이던 무슨 공부이던 모든 것들의 귀착점은 요익중생(饒益衆生)이어서 중생현실고를 해결해 주는 길이어야만 합니다.

은산철벽을 만나보셨습니까?
오늘은 해제일이나 화두 참구하는 공부인들은 의심이 진행되는 한 결재요, 공안타파하여 실천행에 나서는 날이 진정한 해제가 될것입니다.

불기2558년 7월 해제일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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