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시와 굿시를 넘어 판소리체시로 나아간 하종오의 시”
하종오 시인의 서른아홉 번째 시집은 판소리체시집 〈악질가〉이다. 
시집 〈악질가〉에는 ‘판소리’의 형식을 빌려 민주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방자치제의 부조리한 내용 등을 풍자하고 있는 판소리체시 6편이 담겼다.

‘판소리체시’는 하종오 시인이 만들어 쓴 장르 명칭인데, 과거 김지하 시인이 사용한 장르 명칭인 ‘담시’와 ‘대설’보다 전통예술의 연희 현장에 더 가까워진 감각을 드러낸 장르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하종오 시 세계의 흐름 속에서 보면 새로운 형식이지만 이미 충분히 예견된 형식의 출현이다. 하종오는 이미 첫 시집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1981, 창비)에서부터 전통 민요 가락을 토대로 자신만의 유장한 호흡과 어법을 빚어내었고, ‘굿시집’이라고는 장르 이름을 붙여 무가 가락에 당대 현실의 문제를 담아 무당굿으로 공연할 수 있는 〈넋이야 넋이로다〉(1986, 창비)를 펴낸 바가 있는데, 그즈음 그의 시에서 빠진 가락이 판소리 가락이었다.

한국 전통예술의 양식으로는 크게 민요와 무가(巫歌)와 판소리의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1980년대 하종오의 민요조 시와 굿시는 한국 구비문학의 세 가지 전통 양식 가운데서도 민요와 무가에 뿌리를 두고 독특한 시적 형식을 창조한 것이었다면, 그로부터 약 40년이 지나 펴낸 판소리체시는 전통의 세 양식 중 마지막 남은 하나인 판소리의 형식인데,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고 있는 한국의 지역정치 현실을 풍자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민요와 무가가 노래에 중심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면 판소리는 서사(이야기)에 중심을 두면서 동시에 노래까지도 내포한다는 점에서 ‘판소리체시’ 여섯 편이 실린 하종오 판소리체시집 〈악질가〉는 하종오 시편의 전통 가락의 현대적 재창조의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시편과 2022년 판소리체시를 견주어보았을 때 변하지 않은 점은 하종오의 시적 지향점이 지배계층의 정서와 정신보다도 민중의 정서와 정신을 주체로 삼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하종오 시의 전통 가락의 활용은 민중의 삶과 구별되는 문학보다 민중의 삶과 구별되지 않는 문학이 더 문학적일 수 있다는 일관된 의식의 반영일 것이다.

하종오가 1980년대 초반에 민요와 무가 형식을 자신의 시에 도입한 것은 그전까지 서구 근대문학 흉내를 내던 한국시에서 놓쳐왔던 민중의 마음씨와 말씨를 다채롭게 표현함으로써 한국시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는 한국시문학사의 평가에 이어서, 2020년대 초반의 판소리 형식의 차용은 한층 더 그런 평가를 구체화한다.

그러면 하종오가 2022년에 판소리체시를 쓰는 시적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 현대시가 현실 문제에서 떠난 지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현실은 인간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지방, 지역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시인의 문학적 소신과 신념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실제로 기초지방자치단체인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시인 자신이 경험하고 목격하는 지역사회의 현실이 혈연 학연 지연으로 얽혀서 돌아가는 형국이어서 미래를 전망할 수 없을뿐더러 현재가 희망적이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종오 시인이 쓴 ‘판소리체시’ 여섯 편은 대한민국에서 군(郡)으로 지칭되는 지방의 구성체을 이루고 있는 계급 혹은 계층인 군수, 군의회의원, 공무원, 토호, 일반주민이 지방의 주체로 얽히고 설켜서 생존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노래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지방, 지역의 실체를 독자에게 환기시켜 주목하게 하고 고민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저자 : 하종오

시인: 1954년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사월에서 오월로〉 〈넋이야 넋이로다〉 〈분단동이 아비들하고 통일동이 아들들하고〉 〈정〉 〈꽃들은 우리를 봐서 핀다〉 〈어미와 참꽃〉 〈깨끗한 그리움〉 〈님 시편〉 〈쥐똥나무 울타리〉 〈사물의 운명〉 〈님〉 〈무언가 찾아올 적엔〉 〈반대쪽 천국〉 〈님 시집〉 〈지옥처럼 낯선〉 〈국경 없는 공장〉 〈아시아계 한국인들〉 〈베드타운〉 〈입국자들〉 〈제국(諸國 또는 帝國)〉 〈남북상징어사전〉 〈님 시학〉 〈신북한학〉 〈남북주민보고서〉 〈세계의 시간〉 〈신강화학파〉 〈초저녁〉 〈국경 없는 농장〉 〈신강화학파 12분파〉 〈웃음과 울음의 순서〉 〈겨울 촛불집회 준비물에 관한 상상〉 〈죽음에 다가가는 절차〉 〈신강화학파 33인〉 〈제주 예멘〉 〈돈이라는 문제〉 〈죽은 시인의 사회〉 〈세계적 대유행〉 등이 있다

악질가|저자 하종오|도서출판b|값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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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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