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비구니회(회장 본각스님)가 조계종 총무원과 선학원을 방문하며 조계종과 선학원 갈등의 해법고리를 찾기 위한 행보에 나섰다.

전국비구니회 운영위원장 상덕스님을 비롯해 수석부회장 광용, 현진스님과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철우,정관 스님으로 구성된 대표단은 7월12일 오전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을 찾아 주계종 총무원 총무부장 삼혜스님을 예방하고 전국비구니회의 호소문을 전달했다.

---이하 전국비구니회 호소문 전문----------------------

선학원 소속 비구니사찰 보호를 위한

전국비구니회의 호소문

재단법인 선학원과 조계종간 지속된 갈등이 고착화된 지 수년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동안 선학원은 독단적인 이사회 운영과 정관 및 분원관리규정의 밀실개정, 법원의 판결로 징역형을 받은 법진 스님을 4선 이사장으로 선출하는 등의 행위로 불교계를 넘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현재 선학원은 탈종단 수순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선학원 소속 분원의 수많은 조계종 비구니 스님들 불안과 고충도 가중되고 있습니다.

선학원은 정관상 ‘조계종의 종지종통을 봉대한다’는 조항을 삭제하고, 분원관리규정을 개정하면서 조계종 승적을 가진 비구니 스님들을 ‘이중승적’이라는 이유로 창건주 승계 및 분원장 임명에서 자격을 제한하는 등 사실상의 탈종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견제장치 없이 치닫고 있는 선학원 이사회의 독주체제는 우리 비구니 스님들에게 적지 않은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선학원 이사회는 심지어 소속 분원의 토지를 일방적으로 매각하고, 그동안 선학원 정상화를 촉구해 온 분원에 대해서는 감사 불응을 이유로 사고사찰 지정 및 재산관리인 파견을 통보하는 등 각종 피해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국비구니회는 조계종 소속 비구니 스님들의 피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판단으로 오늘의 긴급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선학원 소속 승려의 75%가 비구니 스님이며, 우리 전국비구니회 소속 6000여명 비구니 스님들 가운데 1300여명이 선학원 소속 사찰의 분원장이거나 그 도제입니다. 따라서 선학원 문제는 우리 전국비구니회의 존속과 직결되는 심각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과거 비구니스님들이 선학원에 등록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이 한국불교의 아픈 역사와 관련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불교정화운동이 촉발되고 비구.대처간 갈등이 심화되는 등 한국불교 혼란기에, 수많은 조계종 비구니 스님들이 삼보정재를 보호하기 위한 순수한 의도로 선학원에 사찰을 등록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선학원은 조계종 큰스님들을 주축으로 한 불교정화운동의 산실이었습니다. 또한 재단법인이었기 때문에 선학원에 사찰을 등록하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선학원의 모습에 그러한 과거의 믿음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분원의 의사와 관계없이 삼보정재를 매각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분원은 사고사찰로 지정하는 등 그 횡포가 날로 심화되는 모습입니다.

과거 삼보정재를 지키기 위해 선학원에 사찰을 등록했던 많은 비구니 스님들은, 현재 조계종과 선학원 간 오랜 갈등 속에서 그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보호받지 못한 상태로 혼란과 불안에 고통 받고 있습니다.

나아가 조계종이 법인관리법에 의거해 미등록법인에 대한 권리제한 조치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선학원 소속 분원의 도제들까지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수많은 비구니 스님들이 선학원과 조계종간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선학원을 선택하면 정체성에 다름없는 조계종 승적을 잃고, 조계종을 선택하면 선학원에 등록된 사찰을 잃게 되는 이해 못할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 전국비구니회에 소속된 선학원 분원장‧도제는 결코 적은 인원이 아닙니다. 더욱이 출가인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서, 우리는 한사람의 도제라도 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과 안정적인 수행환경을 보장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선학원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비구니들의 손발이 묶여버린 현 상황이, 한국불교의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고 어떠한 평가를 받게 될지 두렵습니다.

또한 더 이상 희망이 없고 꿈이 없는 이 종단에 누가 출가를 할 것이며, 우린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법을 설할 수 있겠습니까? 한사람 한사람의 스님은 더없이 소중한 한국불교의 자산입니다. 조계종과 선학원이 고착화된 갈등 속에서 서로의 명분과 이익만을 계산하는 동안, 수많은 스님들의 불안과 냉담은 점점더 크기를 키워 마침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한 결과로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세간에 도덕과 양심이 희미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심화되는 갈등으로 법과 제도가 우선되고 법보다 주먹, 법 아래 사람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 출가 수행자는 달라야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곧 진리이자 법이며, 우리의 출가정신은 뭇 생명을 고통에서 구하기 위한 것임을 되새길 때입니다.

이에 전국비구니회는 아래와 같이 호소합니다.

1. 조계종에 바랍니다

지금 조계종은 명실상부 한국불교 최대종단으로 우뚝 섰습니다. 종단은 종도들이 안정적으로 보호받는 가운데 행복한 마음으로 수행정진할 때 번영할 수 있습니다. 선학원 문제를 출가의 정신, 자비의 마음, 화합의 행동으로 먼저 물길을 열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2. 선학원에 바랍니다.

선학원은 무의미한 탈종단화를 중단하고 분원장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수많은 조계종 스님들을 이중승적으로 통제하려는 비정상적 행정을 멈추고, 선학원에 등록한 사찰들을 기반으로 조계종과 별개 종단을 만들려는 시도를 중단하십시오.

뿌리와 정신이 담겨있지 않는 종단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빠른 시일 내에 분원장이 참석하는 총회를 열어 정관을 바로잡고, 분원들을 옭아매는 분원관리규정의 독소조항들을 무효화해야 합니다. 단순한 재단법인이 아니라 한국불교 정화 기치를 세웠던 큰스님들의 설립정신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3. 선학원 분원장스님들께 바랍니다.

내 죽은 뒤의 일은 내가 어찌할 수 없으며, 죽은 부모가 자식을 살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지키기 위해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출가할 때의 초심이 무엇이었습니까?

본분과 초심을 저버리지 않고 분원장들의 권리가 무엇인지 당당히 요구합시다. 바른 견해와 바른 시각으로 선학원 이사회의 현재 모습을 직시하셔야 합니다. 다른 이를 고통에 빠뜨린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 칼날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분원장 스님들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단합된 모습이 필요합니다.

4. 전국비구니회 스님들에게 바랍니다.

전국비구니회는 하나입니다. 조계종 소속이 따로 있고, 선학원 소속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선학원 소속 비구니 스님들이 직면한 절망과 조절을 방치하고 방관한다면, 이는 전국비구니회의 기반 자체를 흔드는 계기가 될 것이며 전국비구니회가 흔들리고 와해된다면 승가 역시 온전할 수 없습니다.

늦은 후회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기 전에,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합니다. 선학원 소속 스님들이 처한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모두가 힘을 합쳐 지켜냅시다.

불기 2566(2022)년 7월 11일
대한불교조계종 전국비구니회 회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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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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