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의 시인이자
낡은 불교를 개혁한 종교인
그리고 일제의 탄압과 회유에도
뜻을 굽히지 않은 독립운동가


낡은 틀에 안주하던 불교를 개혁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한 《조선불교유신론》. 소멸과 생성의 윤회 사상 속에서 서정성이 돋보이는 〈님의 침묵〉. 소를 사람의 마음에 비유하여 잃어버린 나를 찾자는 뜻을 담아 지은 심우장.
이 안에는 만해 한용운의 뜻이 흐르고 있다. 개혁적인 종교인이었고 문학적 깊이와 폭을 이룬 시인이자 일제의 탄압과 회유에도 뜻을 굽히지 않은 독립운동가. 시대는 암울했으나 그는 시대를 깨치고 나왔으며, 다시 만날 날을 가장 뜨겁게 믿었다.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승려인 만해 한용운. 65세로 입적하기까지 세상은 암울한 시대였지만 그의 말과 글, 그리고 그의 삶은 시대를 깨치고 밝히는 빛이었다.

정옥으로 태어나 이후 용운이 되었고, 낡은 불교의 혁신을 부르짖었으며, 독립운동의 선두에 섰고, 〈님의 침묵〉을 노래한 만해 한용운. 그는 누구보다 민족을 사랑했고, 종교에 투철했으며, 불의에 굴하지 않은, 시대를 밝힌 거룩한 정신이었다. 아울러 그는 독립운동가이자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한 승려로, 살아생전 여러 신문과 잡지에 작품과 논설을 실었고, 이 글들은 그의 행적에 버금갈 만큼 큰 궤적을 남겼다.

〈조선 독립의 서〉과 〈한용운 취조서〉
〈명사십리〉에서 《조선불교유신론》까지
만해 한용운의 거룩한 정신


《힌용운의 나의 님》은 1919년 〈조선 독립의 서〉에서 1940년 〈명사십리〉까지 신문과 잡지에 실린 글들과 대담을 묶었으며, 그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인 《조선불교유신론》을 부록에 담았다. 암울한 시대에도 오롯이 서고자 했고 그래서 누구보다 빛을 발하는 만해 한용운의 거룩한 정신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만해 한용운의 진솔하고 강직한 목소리를 온전히 읽을 수 있으며, 우리가 미처 몰랐던 그의 새로운 면모와 변하지 않는 정신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그의 말과 글이 당대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가 나아갈 길을 바로 세우는 버팀목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한용운

저자 : 한용운


승려이자 시인, 독립운동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에서 몰락한 양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정옥, 아명은 유천이며, 용운은 법명이다.
어릴 때부터 한문을 수학했으며, 14세 때인 1892년에 결혼했다. 이후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한 데 이어 백담사 등에서 불교 서적을 탐독했다. 1908년 일본을 주유하며 신문물을 시찰하고 불교와 서양 철학을 청강했으며, 32세 때인 1910년 백담사에서 《조선불교유신론》을 탈고했다. 항일투사로도 활동해, 1918년 청년 계몽 운동지 《유심》을 창간하고 1919년 3·1운동을 주도했으며,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47세 때인 1925년 오세암에서 시집 《님의 침묵》을 탈고한 뒤 신간회 발기, 광주학생운동 민중대회 개최 등 항일운동에 힘쓰는 한편, 월간 《불교》를 인수하고 승려 비밀 결사인 만당에 영수로 추대되었으며, 1932년 조선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로 선정되었다. 성금으로 성북동에 심우장을 지을 때 총독부 건물이 마주보이는 것이 싫다며 집을 북향으로 틀도록 했고,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중에도 일제의 식량 배급을 거부했다.
광복 1년을 앞둔 1944년 66세를 일기로 심우장에서 입적했으며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으며, 서울시 성북동 심우장과 설악산 백담사에 만해기념관이 세워졌다.


역자 : 조일동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후 여러 출판사에 몸담았으며, 현재 이다북스에서 출판 기획을 맡고 있다. 에세이집 《마흔의 봄》을 썼으며, 《나혜석의 고백》《나운규의 말》 등을 엮었다.

한용운의 나의님|저자 한용운|역자 조일동|이다북스|값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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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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