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가 담고 있는 거대한 세계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된 1990년까지 『열하일기』 자체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성과물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물론 전통시대의 연행(燕行) 사신들이 썼던 여행 기록과 연암 박지원의 연행기는 차원이 달랐다. 내용과 형식 모든 면에서 『열하일기』는 파격이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열하일기』 전체를 조망하기보다는 그 책에 수록된 「호질」 「허생전」 등의 단편과 북학(北學) 사상에 초점을 맞췄다. 1990년대까지 우리 학계는 주지하듯 ‘내재적 발전론’이라는 시각에서 실학(實學)이라는 사상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의 흐름을 단숨에 바꿔놓은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이 책을 통해 부분이 아닌 전체로 연암 박지원이라는 문제적 인물을 파악하고 『열하일기』에 담긴 거대한 세계를 조망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책의 출간이 한 계기가 되어 『열하일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번역본들과 교양서들이 잇달아 나오고, 심지어 작품의 배경인 열하 지역이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로 부상하기도 했다.

『열하일기』는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사상적 논설, 시화와 잡록, 문서나 서적으로부터의 발췌 등 다종다양한 내용을 수록한 백과전서적 체제를 갖춘 저작이다. 이 책은 이러한 『열하일기』의 체제를 해체해서, 청조 중국의 현실에 대한 연암의 인식과 이에 기초해 전개된 그의 북학론으로 재구성하여 논하고 있다. 그리고 이 논의와 밀접한 관련 아래 『열하일기』의 문예적 표현 기법을 다각도로 고찰했다. 따라서 이 책은 『열하일기』의 문예적 측면을 중심으로 기술하면서도, 문(文)·사(史)·철(哲)을 포괄하는 종합적 서술을 지향한다.

이 책의 성과로 인해 연암 박지원은 진정한 조선의 대문호로 거듭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출간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열하일기』 최고의 연구서로 꼽히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열하일기』의 형성 배경에서부터 연암의 당시 중국 현실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이 저작의 표현 형식상의 특징과 당대 문단에 끼친 영향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해명하고 있다.


연암 박지원 연구에 평생을 바친 학자의 최고의 성과물

김명호(金明昊) 교수에게 연암 박지원은 마르지 않는 샘이고, 평생의 화두다. 연구의 범위를 넓혀가는 다른 학자들과 달리 김명호 교수는 우직하게 연암이라는 한 우물만 팠다. 연암 박지원에 이어 박규수(朴珪壽) 연구에도 매진했으나, 박규수 역시 연암의 손자이면서 그의 문학적·사상적 계승자이니 연암이라는 자장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단행본으로 정리된 박사학위 논문이 바로 이 책의 초판본 『열하일기 연구』다. 이후로 연암 연구서로는 『박지원 문학 연구』(2001), 『연암 문학의 심층 탐구』(2013)를 더 냈다. 그리고 연암 박지원 평전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홍대용이라는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될 큰 산을 마주하고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라는 거작을 또 한 권 펴냈다. 아울러 『연암집』(燕巖集) 완역본,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 선역본을 펴냈다. 김명호 교수의 연암 박지원 연구 성과는 현재 학계 최고의 수준이다.

『열하일기 연구』의 초판본이 나온 지 30년이 지났지만, 현재까지도 이 책은 『열하일기』에 대한 “거의 유일한 본격 연구서”로 남아 있다. 이 책을 넘어서는 성과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간 꾸준히 재출간 요청이 있었고, 저자의 제자들은 구식활판 인쇄본인 초판본 텍스트를 직접 입력해서 저자에게 선물하며 재출간을 희망했다. 이제 수정증보판을 펴내며 저자는 초판본 『열하일기 연구』 이후 쌓아 온 모든 연구 성과들을 한 권에 담았다. 저자로서는 평생을 바친 과업이고, 학계로서는 연암 연구의 최고의 성과물인 셈이다.
무엇이 수정되고 증보되었는가?

초판과 달리 수정 증보판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초판의 체제를 유지하되, 저자와 학계의 30년간의 연구 성과를 적극 반영하는 방향으로 집필했다. 원래 7장으로 구성된 목차를 6장으로 조절한 것 외에는 초판의 틀을 거의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수정 보완이나 연구사와 관련된 추가적인 논의 등은 모두 주석으로 돌렸다.
연암의 사상을 논한 3장 ‘중국 현실의 인식과 북학론’은 서학(西學)의 영향을 좀 더 강조하는 쪽으로 논지를 수정했으며, 정조의 문예정책과 문단의 반응을 논한 5장 ‘당대 문단에 끼친 영향’은 새로운 자료들을 추가하여 대폭 보완했다.

2부는 초판 간행 이후 발표한 3편의 논문으로 구성했다. 2편은 기 발표된 『열하일기』의 문체와 사상에 관한 논문이고, 1편은 이번에 새로 집필한 『열하일기』 이본에 관한 논문이다. 이를 통해 초판에서 미진했던 논의들을 보완했다.


저자 : 김명호
1953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덕성여대 국문과와 성균관대 한문학과의 교수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했다. 정년퇴임 후 필생의 과제인 연암 박지원 평전과 환재 박규수 연구의 완성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 『열하일기 연구』, 『박지원 문학 연구』, 『초기 한미관계의 재조명』, 『환재 박규수 연구』, 『연암 문학의 심층 탐구』,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 등이 있으며, 국역서로 『연암집』(전3권, 신호열 공역)과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편역)가 있다

열하일기 연구|저자 김명호|돌배게|값4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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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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