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 않은 곳에서
발견한 특별한 것을 그림과 글로 담아내다


국어 선생님, 서양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 여행작가, 그리고 중학교 국어교사. 저자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안 그래도 번잡한 세상, 1인 다역을 소화하면서 일상의 어떤 ‘틈’을 갈망하게 되었다는 그는 느리게 흘러가는 사찰의 곳곳을 저자 특유의 그림체로 기록하기 시작한다.

어떤 것을 오래 바라보게 되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계단 옆 돌수반에 핀 연꽃의 문양, 햇빛의 움직임에 의해 시시각각 바뀌는 마애불의 표정, 석탑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자신의 원을 전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표정까지. 낮에는 낮의 고요함이 깃들고 밤에는 까만 어둠을 덮은 정적이 가득한 사찰의 풍경에 집중하며 저자는 차차 자신의 소란한 마음과 번잡한 생각을 비워내는 연습을 한다.

저자가 바라보는 풍경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절 구석구석의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또 하나는 꽉 차 있는 자신의 마음 서랍이다. 이런저런 계산들과 소란함으로 잔뜩 채워져 틈이 없어진 좁은 마음은 특별한 것 하나 없이 그저 고요함과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하나둘 비워져간다.

조금 더 느릿하게 흘러가는 절의 시간,
그곳에서 비춰본 마음의 풍경

1부 ‘부처님을 닮은 그곳’은 저자의 시선으로 보고 담은 절의 소박하고도 정감 있는 풍경을 성실하게 기록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사찰을 향해 가는 길에서 느낄 수 있는 계절마다의 아름다움, 처마 밑에 매달린 풍경이나 오래된 석물과 빛이 바랜 탱화, 절 마당에 자리 잡은 무영탑 하나, 소박한 문구가 새겨진 돌기둥 등 절 곳곳에서 발견한 것들, 그리고 절이 자리 잡은 곳 주변의 자연 풍광까지 “부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대한 애정 어린 기록들로 가득하다.

2부 ‘처마 끝 풍경이 내게 물었다’에서는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그 모든 것들에 소란한 마음을 비춰보는 사색적인 글들을 모았다. 절에서 마주한 풍경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결국 자신의 마음 안으로 향한다. 한구석에 자리한 불확실성, 불안감, 크고 작은 슬픔들, 휴식에 대한 갈망 등 다양한 모습들로 제각기 쌓인 마음을 풍경에 비춰보며 그는 점점 그 특별할 것 없는 풍경들에 마음의 온기를 느낀다. 자신이 일상에서 그토록 아파하고 조급해했던 문제들에서 잠시 떨어져 그것을 바라보며 잠시라도 ‘작은 나’가 아닌 ‘큰 나’가 되어보기도, 무너져도 다시 쌓고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얻기도 한다.

이 책은 그가 바라보고 기록한 절의 풍광과 비슷하다. 특별할 것 없이 비슷비슷한 절의 모습들에서 특별함을 발견한 그처럼, 독자들은 그의 글과 그림을 감상하며 점점 일상의 시간과는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절만의 특별한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온통 소란한 것들로 가득차 있는 일상에 조금의 위안을 얻고 싶거나 작더라도 아주 조그만 틈이 필요한 모든 독자들에게 〈처마 끝 풍경이 내게 물었다〉는 느린 듯 밀도 높은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저자 배종훈

서양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 여행작가, 그리고 중학교 국어 교사.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바쁘게 살아가는 그는 낮에는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틈틈이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눈에 담은 것들을 그림과 글로 성실히 기록 중이다. 불교, 명상 등과 관련된 일러스트와 만화 작업을 17년째 병행하고 있다. 출간한 책으로는 『행복한 명상 카툰』, 『유럽을 그리다』, 『마음을 두고 와도 괜찮아』 등이 있다


처마 끝 풍경이 내게 물었다|저자 배종훈|담앤북스|값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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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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