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이 2016년 금산사에서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 법문집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다> 출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불교조계종)

 

 

불교의 대사회 운동에 매진했던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月珠)스님이 22일 입적했다. 법랍 68년, 세수 87세.

 

월주스님은 이날 오전 9시 45분께 자신이 조실(祖室)로 있는 전북 김제의 금산사에서 입적했다.

 

고인은 최근 폐렴 등으로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오다 이날 새벽 금산사로 옮겨 마지막 시간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월주스님은 불교계의 사회 참여를 강조한 그는 경실련 등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했다. 지난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지원 시설인 나눔의집의 후원금 유용·할머니 학대 사건 이후 경기도로부터 대표이사 해임 명령을 받은 일은 오점으로 남았다.

 

월주스님은 193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1954년과 1956년 금오스님을 계사로 각각 사미계와 비구계를 받았으며 개운사, 영화사 주지를 지냈다. 1980년 조계종 제17대 총무원장, 1994년 조계종 개혁 당시 제28대 총무원장을 지냈다.

 

월주 스님은 ‘10·27 법난’의 최대 피해자다. 1980년 당시 합동수사본부(본부장 노태우 보안사령관) 산하 합동수사단은 ‘불교계 정화수사계획-45계획’을 수립했다. 조계종 스님 등 153명을 강제 연행하고 군경 병력 3만2000여명을 투입해 전국 사찰과 암자 5731곳을 일제 수색했다.

 

합수단은 10월27일 새벽 월주 총무원장 등 45명을 체포해 총무원장직과 종회의원직, 주지 등의 사퇴서를 강제로 받았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 같은 재조사 내용을 발표하면서 법난을 ‘특정 종단에 대한 국가권력 남용의 대표적 사건’이라고 결론 냈다.

 

법난 이후 월주 스님은 사회복지와 사회개혁, 남북평화 등 여러 부문에서 활동했다. 한국에서 죽어간 이주노동자를 위해 천도재도 열었다. 이명박 정권 초기인 2008년 3월 당시 ‘한반도 대운하 건설’ 반대 운동에도 참여했다.

 

여러 단체 대표나 이사장을 맡다 보니 공명심을 좇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다. 월주 스님은 대승불교 보살사상의 핵심인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 ‘자미도 선도타(自未度 先度他·자신을 건지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먼저 제도한다)’가 자신의 서원이자 회향(回向·사회화)이라며 ‘보살행’과 ‘깨달음의 사회화’를 강조했다.

 

 

지난해 월주 스님이 대표이사로 있던 조계종 ‘나눔의집’ 운영진이 수십억원의 후원금 중 2.3%만을 피해자를 위해 사용하고, 간병인들이 할머니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사실이 확인됐다. 나눔의집은 월주 스님이 내야 할 건강보험료도 후원금에서 지출했다.


경기도는 지난해 12월 월주 스님 등 이사진 5명에 대해 해임 명령을 내렸다. 월주 스님은 이 명령에 불복해 법원에 제소했다. 명령 집행 정지가 인용됐고, 대표이사직을 일단 유지했다. 경기도에 따르면 월주 스님은 나눔의집 대표이사직을 유지했지만 업무가 정지된 상태였다. 장례는 5일간 금산사에서 조계종 종단장으로 치러진다. 영결식과 다비식은 26일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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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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