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탯줄’을 타고 나와 ‘링거 줄’에 매달려 떠나는 삶의 순환, 삶의 아이러니

걷는사람 시인선의 42번째 작품으로 박주하 시인의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가 출간되었다.

 1996년 《불교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주하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그의 지난 시집들이 시대와 불화하는 인간의 상실과 우울을 노래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상처로 얼룩진 다양한 마음들을 어루만지는 섬세한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시집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에는 “침묵의 푸른빛”이 가득하다. 복잡한 세계 속에서도 잔잔하게 흐르는 것은 “울음밖에 배운 게 없는 텅 빈 마음”의 푸른빛이다. 시인은 마치 “고요에 몸을 씻은 새가/투명한 의자에 투명하게 앉아”(「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있는 것처럼 처연하고 깊은 시선으로 주변을 응시한다. 이러한 시선은 병들고 험한 세계와의 화해를 원하는 소망이기도 하다. 그는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값진 방”이라고 명명하면서 “그 방 하나를 들이려고 평생 집을”(「사람의 집」) 짓는 일을 시의 업(業)으로 삼는다. 박주하의 시편들은 세계를 수용하는 마음의 공감과 증언으로 응결된다.

그는 특히 꽃, 새, 나무, 구름과 같은 주변 자연을 바라보고 심상이 동화된다. 가령 “가지마다 잎을 틔우느라 저 나무들은 얼마나 목숨이 가렵고 아팠을까/……/오직 허공 하나를 꿈꾸며 꽃을 피운 게 나무의 죄가 되었나”(「허공은 나무가 꾸는 꿈」), “죽음이란 어쩌면 지는 저 꽃잎처럼 가볍고, 아름답고, 무정한 일”(「잎 먼저 틔운, 꽃 먼저 피운,」)이라는 고백은 자연과 삶이 가진 생태적 이치를 드러내는 증언이다.

또한 이번 시집에는 유독 ‘줄’, ‘날’과 같은 ‘선’의 이미지가 강조되는데, 배롱나무를 ‘눈 밝은 검객’으로 지켜보면서 “멀어지는 일들은 그대로 두세요/칼날은 칼등에 기대어 자라납니다”(「심검(心劍)」)라고 단언하거나, ‘지하철 순환선에서 칼갈이를 팔던 남자’를 본 이후로 “홀로 답이 되는 날이면/손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칼갈이를 찾는다”(「칼날에 마음이 베일 때」)라며 자조 섞인 한숨을 내뱉기도 한다.

이러한 의식은 「줄에 관한 생각」에서 좀 더 확장되어 언급된다. 보이지 않는 생(生)의 줄을 거문고 줄에 비유하여 “서로를 튕겨 주는 믿음으로 즐거웠”다고 표현하는 한편 “약속에 매달리고/관계에 매달리며/……/몸으로 엮었던 줄을 마음이 지워 버렸네”(「줄에 관한 생각」)라는 대목에서는 이율배반적인 인생사를 절묘하게 포착한다. 이처럼 ‘줄’은 ‘탯줄’을 타고 세상에 나온 사람이 결국엔 ‘링거 줄’에 매달려 세상의 끝을 바라보는, 인간의 짧은 생애를 축약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시인에게 다양한 ‘선’들은 날카로운 세계 속에서 한 인간이 상처받고 회복되어 가는 연속성을 관통하는 매개체가 된다.
 
이경호 문학평론가는 “거문고는 음역이 낮고 소리가 무겁고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며 “이런 소리 효과라야만 생의 근본을 뒤적이는 느낌마저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며 박주하 시인이 튕기는 한 줄의 노래에 의미를 부여한다.



저자 박주하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1996년 《불교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항생제를 먹은 오후』 『숨은 연못』을 냈다.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저자 박주하|걷는사람|값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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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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