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과 현실의 구체성으로 낙하할 수밖에 없는
비평의 중력-고명철 문학평론집 『문학의 중력』”

고명철 문학평론집 『문학의 중력』이 나왔다.

제목 중의 ‘중력’은 인간이 땅을 딛고 살 수 있게 하는, 예의 자연법칙 그 중력이다. 저자는 “인간은 중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중력을 체감하며 산다는 것은 인간을 비롯하여 뭇 생명체들과 공존, 상생하는 현실 인식을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공존과 상생이 깨진 현실을 구체적으로 증언하는 작품들, 역사에서 나타나는 패배와 환멸의 서사들을 매개로 하여 이들의 구체성에 천착한 비평을 모은 평론집이다. 
 
『문학의 중력』은 ‘역사와 현실과 마주하는 비평의 비천함’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우리 역사에서 패배의 경험과 지금 현실의 비루한 삶 등을 문학적 진실로 드러냈다면 비평은 이들에게 온전히 낙하하여 다가가는 중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생경한 이론과 개념을 무리하게 끌어와 작품을 애써 비평하면 작품의 온전한 실상과 어긋나면서 비평의 구체성이 증발된다. 우리의 삶과 현실의 구체성을 무화시키는 이런 비평은 비평으로서 활력을 잃을 수밖에 없고 비평의 중력을 상실한 셈”이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부제로 단 ‘비평의 비천함’은 반어적이고 도발적이다. 중력을 가졌다면 마땅히 아래로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의 중력』은 5부로 나누어 모두 39편의 글을 실었다.
1부의 부제는 ‘평화 체제를 향한 문학운동/정동’이다. 여기서는 분단의 극복과 평화 체제의 실천을 문학운동의 시각에서 살펴본다.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의 성과와 남북 문학 교류의 새로운 동력을 위한 문학운동의 과제를 모색하는 글이 들어 있다. 또 북한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홍석중의 장편소설 『황진이』와 이경자의 분단 서사들, 김재영, 김현식 소설에 나타나는 분단의 문제의식에서 문학이 울리는 정서에 주목한다.
 
2부 ‘정치적 상상력을 수행하는 언어들’은 단재와 신동엽, 김수영으로 이어지는 혁명의 문학적 사유는 어떤 것인지를 세심히 살핀다. 그리고 이 문학적 사유들을 길어 올려 새로운 혁명의 동력을 구성하는 데 있어 재일조선인 등의 ‘한국어문학’도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을 역설한다. 저자는 “재외동포문학은 그동안 한국문학의 정치적 상상력으로 다루기 힘들었던 문학 사안을 자유롭게 다루는 특장을 지니고 있고, 근대성을 철폐하는 혁명의 임무에 유연성을 부여할 수 있어 문학 주체로서 인식해야 하고, 북한문학도 여기에 든다”고 한다. 
 
3부는 일제 강점기, 4·3제주항쟁, 한국전쟁, 5·18광주항쟁 등 역사의 가시밭길에서 패배와 환멸을 껴안은 문학작품의 비평이 주를 이룬다. 이기영의 『대지의 아들』은 식민지배에 협력하는 이야기인가, 아니라면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 소설에서 보이는 이기영의 정치적 상상력의 스펙트럼은 어떤 단일한 것으로 말할 수 없어” 기존의 독법들을 꼼꼼히 분석한다. 또 4·3제주항쟁을 기억하고 증언한 서사들에서 정치윤리의 언어들을 캐내며, 염상섭의 소설에서는 전쟁으로 삶의 기반과 기존 윤리의식이 붕괴되어 일상이 상처뿐인 전쟁미망인과 이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이 상처를 치유하고 정상적 일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신생의 욕망을 읽어낸다. 
 
4부는 한국사회의 자본주의 세태를 포착한 박완서의 작품과 위험하고 가파른 욕망을 드러내는 한승원의 소설들에서 자본주의·욕망의 구조가 어떻게 짜여 있는지 살핀다. 노동 안팎을 이루는 삶의 현실을 다룬 조영관의 작품과 매춘의 비루한 생을 그린 김우남의 소설 비평은 ‘삶의 심연으로부터 솟구치는 생의 경이로움’을 발견하도록 이끈다. 은미희의 성폭력에 대한 약소자의 증언을 ‘문학적 보복과 구원’으로 위무하기도 한다. 
 
5부는 저자가 ‘압록강의 접경지대를 응시하며’ 식민지 근대의 역사를 환기하고, 폭파된 압록강 단교에서 분단의 현실을 다시 새긴다.

『문학의 중력』은 비평의 과제를 “작품을 매개로 동시대의 삶과 현실에 비평적 개입을 시도함으로써 인간과 세계를 탐구하는 만큼 인간의 삶과 현실의 구체성에 천착해야 할 것”으로 삼는다. 이 과제는 비평의 근본이어서 평범하기도 한데, 저자는 그렇다면 래디컬한 비평이 절실하게 수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 고명철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 -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아시아ㆍ아프리카ㆍ라틴아메리카 문학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지구적 세계문학 연구소〉의 연구원.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세계문학, 그 너머>,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문학의 중력|저자 고명철|도서출판b|값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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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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