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게 해주는
작지만 묵직하고, 쉽지만 심오한 목판화


소품이라고는 하지만 판화의 크기만 작아졌을 뿐, 안에 담긴 메시지는 변함없이 묵직하고 오묘하다. 오히려 계산된 바 없이 편안하게 그려진 그림만이 갖는 솔직한 매력이 더욱 돋보인다. 눈에 힘을 풀고 마음에 빈틈을 낼 때 비로소 감각되는, 당연하게 여기곤 했던 소중한 삶의 순간들이 작품마다 편편이 빛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자면 새삼 환기되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 자신의 힘으로 노동하고 생활을 꾸림으로써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건강한 감각이 간결하고 힘있는 선을 타고 전해져 온다.

판화집은 세 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맑은 마음에 비친 삶’에는 이철수의 예리한 성찰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 이야기가 담겼다. 작가는 노동과 자본, 환경 문제를 조목조목 짚으며 인간의 오만과 탐욕을 경계한다. 바깥세상에 현혹되던 마음을 스스로 가눌 수만 있다면 삶을 능동적으로 일궈나갈 수 있게 된다는 귀중한 진리가 다양한 소재와 장면으로 표현된다.
2부 ‘사물에 깃든 생각’에는 평범한 사물들이 이철수의 시선을 거치며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는 과정이 나타난다. 사방으로 트여 모든 시선을 받아들이는 사방탁자, 투명해서 제 속을 다 보여주는 유리병, 불을 켜면 자연히 일렁이는 그림자를 드리우는 호롱, 누군가에게 오롯이 기댈 자리를 마련해주는 의자 등등 작가의 삶의 공간에 놓인 소박한 멋을 지닌 물건들이 깊은 사유의 단초로 등장한다.
3부 ‘일상이 곧 수행’에는 이철수 자신이 화자로 등장할 법한 판화들을 모았다. 작가가 사는 동네 풍경, 가족과 이웃과 함께 어울려 지내는 일상 풍경이 눈에 보일 듯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매일매일 다양한 사람과 스쳐가고 인상 깊은 장면을 발견하는 작가가 핍진한 생활 속에서 얻게 된 깨달음이 정겨운 그림과 어우러진다.

각각의 판화에 나란히 실린 작가의 짧은 글은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돕는 동시에 그 자체로 한 편의 경구로 다가온다. 이철수는 세상에 무가치한 것은 없으며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고 말한다. 그의 글과 판화를 함께 놓고 감상하다보면 이 커다란 세계에서 인간의 일생은 찰나의 시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절로 겸허해진다. 그리고 우리 삶에 가치 없는 순간은 없다는 것을 마음으로 깨우치게 된다.
이철수의 판화는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과 사물을 지긋이 바라보며 하루하루의 의미를 찾고 주어진 삶을 소중히 여기도록 해준다. 이 판화집을 읽고 나면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삶을 무료하게 반복하던 지난 시절이 문득 낯설어지고, 찾아올 내일이 귀한 축복처럼 여겨진다.


저자 이철수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판화가 이철수는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때는 독서에 심취한 문학소년이었으며 군 제대 후 화가의 길을 선택하고 홀로 그림을 공부하였다. 1981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전국 곳곳에서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1989년에는 독일과 스위스의 주요 도시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이후 시애틀을 비롯한 해외 주요 도시에서 전시를 열고, 2011년 데뷔 30주년 판화전을 했다.
탁월한 민중판화가로 평가받았던 이철수는 이후 사람살이 속에 깃든 선禪과 영성에 관심을 쏟아 심오한 영적 세계와 예술혼이 하나로 어우러진 절묘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당대의 화두를 손에서 놓지 않는 그는 평화와 환경 의제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농사와 판화 작업을 하고 지낸다. 지금은 선불교 공안집 『무문관』을 주제로 한 연작 목판 작업을 진행중이다.


내일이 와준다면 축복이지 !|저자 이철수|문학동네 |값1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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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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